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문단 편집) == 기타 == 크리스티나가 대통령이 되자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2003년 ~ 2007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하던 중에 국정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아내의 조력자로 최선을 다했다. 2007년~2009년에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로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09년 ~ 2010년도에 지병인 심장마비로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에 사망했다. 향년 60세. || [[파일:external/nimg.sulekha.com/barack-obama-julia-gillard-cristina-fernandez-de-kirchner-jose-manuel-barroso-meles-zenawai-recep-tayyip-erdogan-2010-11-11-22-0-23.jpg|height=3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3px-Cristina_Fernandez_y_Obama.jpg|height=300]] || 서울에서 개최된 [[2010 G20 서울 정상회의|G20 정상회담]]에서 다른 국가들의 정상들은 다들 웃는 얼굴인데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키르치네르만 울상을 짓는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있다. G20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 남편이 심장발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정상들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위로해줬다고 한다. 인권 탄압에 맞선 인물이지만, 입이 방정이라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다. 중국인의 영어 발언을 조롱하는듯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05/2015020502469.html|농담]] 때문에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인은 논란이 되자 해당 트윗에 대해 "자신의 아르헨티나 비판 세력들의 우스꽝스러움과 부조리함이 지나쳐 이런 유머로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며 사과했다. 또 2007년 영부인 시절 당시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를 칭송하고 삼국 동맹을 제국주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배신이라고 폄하하며 삼국 동맹이 아닌 삼국 배신이라 불러야 한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때 아르헨티나 육군 한 포병부대 이름을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부대"로 바꿔서 논란이 되었다. 이에 아르헨티나 신문사 라 나시온의 사주가 격분해서 아예 자기가 사설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비판하고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를 남미의 히틀러라고 맹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라 나시온의 사주는 과거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바톨로메 미트레의 후손이고 바톨로메 미트레는 라 나시온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그래도 과거 정부와는 다르게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일어났던 "[[더러운 전쟁]]"의 진상을 밝히는데 적극적이었고,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성사시키는 등 성소수자의 권리 향상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중남미 자체가 동성애에 비교적 관대한 흐름이 나타나곤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남미 첫번째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국가는 아르헨티나다. (이전에 멕시코 일부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바 있지만 전국에서 합법화된건 2015년이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상당히 부패한 정치인이라는 평도 있어서(이른바 "K그룹"과 관련해서 뒷얘기가 많다.) 평이 상당히 미묘하다. 또한 남편이 살아있었을때는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찰떡궁합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평이었는데 남편이 사망하고 나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인물이 없어져서 다소 막장화 되었다는 평도 있다. [[프란치스코(교황)|후에 교황이 된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과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사이가 그닥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547319-1B03AC5900000578-283_634x425.jpg|width=390]] [br]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 ||<:>[[파일:external/cdn.ruvr.ru/2023-07-12T163744Z_1056018634_GM1EA7D01NH01_RTRMADP_3_ARGENTINA.jpg|width=390]] [br]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 || 제2의 [[에바 페론|에비타]], 제2의 [[이사벨 페론|이사벨]], 남미의 [[힐러리 클린턴|힐러리]]라는 별칭이 있다. 대통령인 남편의 정책에 관여하면서 국민들의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에비타와 비슷하고, 남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점에서 이사벨과도 닮았다. 남편과는 법대 재학 중 만났고, 대도시에서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도 [[시골]] 지역인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가 지방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며 경력을 쌓고 남편이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정치적 동지 역할을 한 것은 힐러리 클린턴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다만 힐러리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자만 상당한 득표수를 얻었음에도 선거인 과반 배정에는 실패해 낙선하였다. [[2011년]] 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으나, 암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정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458868|#]] 암은 아니었지만, 계속 건강 이상설에 시달렸으며, 우고 차베스가 사망한 후에도 베네수엘라에 오래 있을 수 없어 장례식까지는 지켜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결국, 2013년 10월, 뇌수술을 받기로 하여 1개월 간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대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뇌수술을 받겠다고 발표한 것이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서 동정표를 노린 [[꼼수]]라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위 사진에서 보듯, 젊은 시절에는 꽤 미녀였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을 수 없는 모양인지 [[보톡스]]를 많이 맞아 안티들에게는 '보톡스의 여왕'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기도 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17257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